문학이 있는 정보

시정시의 기원, 리릭(lyric)

모심 2011. 8. 7. 11:39

 서정시의 기원, 리릭

- 박현수, [시론], 예옥출판사, 2011, 18-19쪽

 

 

  •  

   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에 그려진 리라. 서정시라는 의미의 ‘리릭’(lyric)은 ‘리라를 타면서 부른 노래’라는 어원에서 왔다.

 

 

 

  그렇다면 지금 시의 막강한 권좌에 오른 서정시의 원형은 어떤 것일까. 서정시, 즉 ‘lyric’의 원형은 그리스의 고대 악기 ‘리라’(lyra) 혹은 ‘라이어’(lyre)와 관련이 있다. 리라는 거북 등딱지를 공명상자로 삼아 양쪽에 쇠뿔로 지주를 만들고 그 사이에 가로목을 걸쳐 위아래로 줄을 걸어 만든 현악기이다. 하프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. 그리스 신화에서 이 리라는 헤르메스가 만든 것으로 되어 있다. 아폴론의 소를 훔친 헤르메스는 이 리라를 연주하여, 화가 난 아폴론을 달래고 도둑질한 소와 이 악기를 바꾸었다고 한다. 그 후로 이 악기는 아폴론이 즐긴 악기로 신성시되었다. 서정시라는 의미의 ‘lyric’은 바로 이 ‘리라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’(lyricos)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. 랭보의 아래 시는 시와 리라의 밀접한 관련성을 보여준다.


내 갔지,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

양복저고리는 관념적이 되었어.

시신(詩神)아, 나는 하늘밑을 가는 너의 충신.

오, 랄랄라. 내 얼마나 멋진 사랑을 꿈꾸었으리.


단벌바지엔 구멍이 났지

꼬마 몽상가라 길에서 운율을

훑었지. 내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어.

하늘의 내 별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.


길가에 앉아 나는 들었지,

구월의 멋진 저녁소리를.

이마엔

이슬방울 떨어졌어, 힘나는 술같이.


환상적인 그림자 손에서 운을 맞추며

가슴 가까이 발을 대고 나도 리라 타듯

내 터진 구두의 구두끈을 잡아다녔지!

  - A. 랭보, 「나의 방랑생활(환상)」, 전문1)


여기에 나타난 시인은 남루한 옷을 걸친 존재이긴 하나, 모든 구속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길 위에 자유롭게 떠도는 낭만적인 존재로 그려진다. 시신(詩神), 즉 뮤즈(Muse)의 충신으로서, 이 시인은 비록 몸은 지상에 두고 있어도 더 이상 지상적인 존재라 할 수 없다. 그래서 시인이 머무는 주막도 하찮은 이 지상이 아니라, 저 먼 하늘의 큰곰자리일 수밖에 없다.

이 낭만적인 시인은 시와 혼연일체가 된 존재이기에, 그의 모든 행위는 곧 시적 행위가 된다. 길 위를 떠도는 행위는 운율을 줍는 일이 되고, 구두끈을 매는 행위는 리라를 타는 일이 된다. 구두끈을 매는 것을 리라 타는 것에 비유한 것은 구두끈 매는 자세가 리라 타는 자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. 그러나 이 유사성 안에는 단순한 자세의 비슷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. 여기에는 시인이 본질적으로 리라 연주자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. 리라를 타면서 노래하던 음유시인이라는 서구적인 전통이 이 비유 안에 흐릿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.


1) A. Rimbaud, 김현 옮김, <<지옥에서 보낸 한철>>, 민음사, 1974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