〈진성학십도차〉를 필사하다 박현수 일흔이 다 된 이황이 열일곱의 임금을 위해 올린 글을 붓글씨로 필사한다 ‘판중추부사 신臣 이황은 삼가 두 번 절하고 아뢰옵니다’ 서툰 붓글씨로 원문을 짚으며 써가니 처음엔 그저 낡은 날 남의 글일 뿐 한자가 낯익고 문리가 트이자 어느새 나는 흔들리는 등불 아래 떨리는 손으로 글을 쓰는 늙은 학자가 된다 필사는 겹문이 중중한 고졸한 집 어디로 들어설지 기필하기 어렵다 ‘때로는 극히 괴롭고 유쾌하지 못한 병통이 있기는 하나 이것이 곧 옛사람들이 말한 바 장차 크게 나아가려는 기미요 또한 좋은 소식이 올 단서이니 절대로 이 때문에 스스로 멈추지 말고 더욱 자신을 가지고 힘쓰옵소서’ 아홉 번을 넘어서고 보니 어느새 제 자식에게 편지를 쓰는 늙은 가장이다 군주와 .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