배들평야
-전봉준의 땅
박현수
전봇대가 포승줄에 묶인 죄수들처럼
줄을 서서 들판을 건너고 있다
배가 들어온 들판인지
배나무가 있는 들판인지 이름이 흐려지듯이
맨 앞에 선 최초의 사람은 희미하다
그는 아득한 평야를 다 건너갔으리라
이 가난의 땅을 기어코 가로질렀으리라
뒤따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한다
묶인 채로, 묶인 채로
맨 앞에 선 사람의 격정에 찬 목청을 듣고
푸른 대나무처럼 솟아오른 그의 의지를 본다
그 마음을 그려보던 마음들이
어느새 그 마음이 되어 줄줄이 따라 나선다
전류가 전봇대를 건너듯이
사람들을 건너가는 전율이 번쩍인다
만석보가 배들평야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
따라나선 마음들은 여기에만 있다는 듯
전봇대가 아득한 평야를 건너듯이
묶인 채로, 묶인 채로
봄, 여름, 가을, 겨울, 봄, 여름, 가을, 겨울
막막한 시간을 가로지르고 있다
<맥> 창간호, 2023.03.
* 배들평야는 현재 전북 정읍시 이평면에 있는 평야.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
만석보가 있는 곳이다. 전봉준은 배들평야의 농민들과 함께 인근 말복장처에서 모여
혁명을 시작하였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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