시에 대한 예의

<배들평야>

모심 2026. 4. 29. 15:47

배들평야

   -전봉준의 땅

 

 

박현수

 

 

전봇대가 포승줄에 묶인 죄수들처럼

줄을 서서 들판을 건너고 있다

배가 들어온 들판인지

배나무가 있는 들판인지 이름이 흐려지듯이

맨 앞에 선 최초의 사람은 희미하다

그는 아득한 평야를 다 건너갔으리라

이 가난의 땅을 기어코 가로질렀으리라

뒤따르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한다

묶인 채로, 묶인 채로

맨 앞에 선 사람의 격정에 찬 목청을 듣고

푸른 대나무처럼 솟아오른 그의 의지를 본다

그 마음을 그려보던 마음들이

어느새 그 마음이 되어 줄줄이 따라 나선다

전류가 전봇대를 건너듯이

사람들을 건너가는 전율이 번쩍인다

만석보가 배들평야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

따라나선 마음들은 여기에만 있다는 듯

전봇대가 아득한 평야를 건너듯이

묶인 채로, 묶인 채로

, 여름, 가을, 겨울, , 여름, 가을, 겨울

막막한 시간을 가로지르고 있다

 

       <맥> 창간호, 2023.03.

 

* 배들평야는 현재 전북 정읍시 이평면에 있는 평야.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

  만석보가 있는 곳이다. 전봉준은  배들평야의 농민들과 함께 인근 말복장처에서 모여

 혁명을 시작하였다.  

 

 

 

'시에 대한 예의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<구름의 하체>  (0) 2026.04.29
<교정 직원 K>  (0) 2026.04.29
박현수 시인의 시 필사  (0) 2023.11.06
2019년 대만시인대회 팜플렛  (0) 2023.09.09
박현수 시인 제2시집 <위험한 독서> pdf 파일  (0) 2023.04.27